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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마드톡 312 유목민과 네스토리언(Nestorian) 기독교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라는 방대한 책을 읽고 있다. 오래전 읽다가 너무 길어 덮어버렸던 책이다. 그러다 지금 다시 읽고 있다. 이번엔 유목민 목회를 하는 사람으로서 자존감의 문제가 걸려있기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을 참이다.

몽골 초원을 비롯하여 지금의 유라시아 대초원 그리고 만주와 중국 대륙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아시아 대륙의 유목민 역사를 총 정리한 책이니 얼마나 방대한가!

나는 물론 유목민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3세기 흉노제국의 역사에서부터 투르크 돌궐과 몽골제국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읽고 읽어도 끝이 없는 역사의 기록이다. 그런데 이번에 나에게 인상 깊었던 내용은 네스토리언(Nestorian)기독교에 대한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동방기독교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터키의 에베소에서부터 시작된 네스토리언 기독교의 시작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우리 한국교회는 로마 중심의 서구 신학으로부터 들어왔다. 1884년 알렌의 선교로부터 한국 개신교가 시작 되었고, 개신교 선교 100년 전에는 카톨릭 선교가 있었다. 이 두 기독교 세력은 모두 서구 중심이다. 바울의 선교로부터 313년 로마의 국가종교로 인정받았던 밀라노 칙령, 330년 동로마 제국의 시작, 그 후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 1453년 동로마 제국의 몰락,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 그리고 미국으로 흘러간 복음이 태평양을 거쳐 우리나라에 오기까지 기독교 역사는 오직 서구 중심적이었다. 우리는 그 서구 기독교 역사만을 기독교 역사라고 배웠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나는 유목민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유목민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나, 유목민은 기독교와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이라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유목민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유목민의 역사 속에 동방교회 즉 네스토리언의 기독교에 대한 언급이 상상 이상이었다. 거의 모든 제국의 역사 속에 특별히 몽골제국의 역사 속에는 네스토리언의 언급이 상당하였다. 칭기즈칸과 네스토리언 기독교는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다. 몽골제국이 가는 곳마다 네스토리언이 존재하였으며 칭기즈칸의 가족과 주변 인물들 가운데 네스토리언 기독교를 믿는 이들이 상당수였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유라시아 초원 곳곳에 대규모 네스토리언 기독교가 존재하였고 그 영향력은 매우 큰 것이었다.

한국교회의 뿌리는 과연 서구신학이었으며, 서구의 선교로부터 비롯되었는가에 대한 본질적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신라시대이후 고려와 조선조 역사 속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했던 기독교의 영성과 네스토리언 기독교의 선교 흔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네스토리언의 영향력이 우리 한반도에까지 이르렀다는 객관적 사실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우리 한국교회의 선교 역사는 달라질 것이다. 나는 매우 조심스럽게 그것에 대하여 확신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유목민의 제국 역사를 공부하면서 나는 네스토리언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에는 몽골의 옛 수도 하라호름에 갔던 적이 있다. 하라호름에 가려 했던 첫 번째 목적은 네스토리언의 흔적이 그곳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나의 관심과 연구는 동방 교회 즉 네스토리언의 기독교가 얼마나 방대하게 유라시아 초원과 몽골제국 그리고 우리 한반도에까지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는지에 집중하려고 한다. 지금 다시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라는 책을 읽으며, 좀 더 젊었더라면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해 볼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이제 나이 들고 눈도 보이지 않으면서 무슨 연구냐 하는 눈총도 받겠지만, 내 안에서는 강하게 네스토리언 기독교의 흔적을 찾아야한다는 부르심이 있다. 내가 유목민 목회를 하고 유목민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발견한 네스토리언 기독교는 한국교회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한국교회에서는 마이너리티 역사다. 어차피 나는 아웃사이더 비주류로 살아온 사람이다. 자연스럽게 내 역사관과 관심사도 역시 비주류다. 나는 운명적으로 변방의 삶을 살아왔다. 지금도 변방성의 역사가 내 관심사다. 그러나 변방성의 역사가 어느 날 주류가 되고 그것이 세상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비주류의 삶을 살 것이다. 그것이 내가 믿는 기독교의 진리이며 역사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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