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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마드톡261 나는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연민하는 것이다

 

분노하는 것도 때가 있나보다. 젊은 한 때 부르르 분노하며 대들던 시절이 있었지만 점차 나이가 들면서 분노하고 싶지가 않다. 어차피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는 자괴감 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아닌 경우라도 마음은 분노가 아니라 참 애처롭다는 생각이 든다. 한발 뒤로 물러나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분노가 아니라 연민의 마음이 든다. 이해가 될 것도 같고 이해보다는 그렇게나 소유하고 얻고 싶은 목적이 있는 사람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천국도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면 세상도 마찬가지로 가장 강하게 소망하는 자의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그럴 경우 몇 가지 조건만은 충족시켜야 한다. 정의와 공평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주변과 객관성의 동의다. 적어도 교회는 공적교회여야 한다는 교회론에 입각하여 교회에 대한 신학적 원칙은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총회와 교회는 그런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았으며, 가장 경계해야 하는 권력화된 교회의 힘에 무력하게 무릎을 꿇는 비굴함을 보였다.

오늘 교단과 교회는 무엇을 향해 나가야 하는가? 무엇이 진리이고 어디가 우리의 목적지인가? 세상의 비판적 소리에 생뚱맞은 해석을 할 정도로 무지하고 또 비굴하다. 이제 우리 목회자들은 평신도들에게 무엇을 설교할 수 있겠는가? 후배들, 신학을 공부하는 신학생들에게는 무엇을 가르치며 교회는 어떠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예수가 오늘 한국교회에 오셔서 그 총회의 자리에 앉아 계셨다면 과연 우리의 그런 결정에 동의하셨을까?

문제는 이제부터다. 이제 어떻게 할까를 깊이 고민한다. 여기서 멈추고 침묵하라는 그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의 말에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중이 절이 싫으면 절을 떠나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절 같은 현실을 떠날 것인가? 어떤 이는 안된다하고 어떤 이는 홀로 떠난다. 나는 오래전 군목시절 당시 하늘을 찌를 것 같은 권력을 가진 보안부대와 한판 겨루었던 적이 있다. 육군 중위 계급의 젊은 군목이 서슬이 푸른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보안사와 붙었던 것이다. 붙었다고 하지만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시의 보안부대가 결코 옳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들은 그런 나를 경계하고 제거하려고 했을 것이다. 나는 힘이 없었고 그들은 무한한 힘이 있었다. 나는 홀로였고 그들은 집단이며 조직이고 당시는 국가 그 자체였다. 그때에 나는 죽기로 했다. 차라리 내 계급장을 떼고 나를 가두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당신들이 내 계급장은 뗄 수 있어도 내 양심과 목회자로서의 자존감만은 함부로 할 수 없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그 자리를 나왔다. 그때에 나는 무력감과 동시에 인간적인 연민의 마음을 느꼈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 그리고 인간이 가지려는 권력이라는 욕망의 힘이 얼마나 거대한 괴물인지를 실감했다.

그리고 오늘 그 당시의 정치권력과 결코 뒤지지 않는 종교권력의 힘을 본다. 교회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권력의 힘을 본다. 그리고 예수를 생각한다. 예수는 무슨 권력을 갖고 계셨을까?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달리셔야했던 예수를 상상해 본다. 분노가 아니라 연민하시는 그분의 눈동자가 보인다. 차라리 연민하라는 그분의 말씀이 들린다. 권력이 얼마나 허무하며 불행한 욕망인지를 모르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라는 그분의 음성이 들린다. 가슴이 저려온다. 이 아침에 연민하라는 그분의 음성을 묵상해 본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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