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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마드톡250 당신들의 욕망이 왜 하나님의 뜻인가?

우리는 무엇에 의하여 움직이는가? 오늘 우리 교회와 우리의 삶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인은 무엇인가? 지금 한국교회를 흔드는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깊은 심연의 물결처럼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엄청난 욕망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권력과 돈으로 무장한 세력이 우리 교회의 저변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그것을 영원히 소유하기 위하여 거대한 작전을 꾸미고 있음을 느낀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분명 욕망과 탐욕의 성이다. 기득권에 대한 집착이며 권력과 자본에 대한 강력한 소유욕이다. 만약 그들이 욕망하는 것을 지키고 그것을 소유하려는 음모가 성공한다면 우리 교회의 종말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나는 지금 불안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내 운명과 한국교회의 미래를 예측하며 과연 어디로 갈 것인지를 숙고 중이다.

자유로운 영혼은 세상에 길들여질 수 없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그분의 말씀과 복음의 진리를 따르기로 약속한 사람들이라면 갈 길은 분명하며 선택의 기준은 확실하다.

내안에도 분명 욕망하는 것들이 있다. 나인들 왜 갖고 싶은 것이 없겠으며 그것을 향한 소유욕이 없겠는가?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포장하지는 않겠다. 만약 그 욕망 덩어리를 하늘의 뜻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비겁하고 스스로의 비루함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을 신앙의 이름으로 변명하고 싶을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그렇게 모든 죄과를 포장하고 변명했던 역사를 기억한다. 신사참배도, 독재와 타협했던 역사도, 자본의 힘을 믿고 오직 부흥과 성장이라는 번영신학의 노예로 살았던 과거도 있었으니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욕망의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을 불구경 하듯이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일이며 나아가 한국교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니 방조함으로 역사의 죄인이 될 수는 없다. 차라리 끝을 보고 떠나는 한이 있어도 할 말은 해야 하겠다. 내 목숨이 비참하게 마감된다 하더라도 두 눈 부릅뜨고 욕망하는 것들의 마지막 간교함은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하고 그래야 죽어도 슬프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만 떠날 때가 온다고 해도 떳떳할 수 있을 것 같아 끝까지 이를 악물고 저 욕망하는 것들이 벌거벗겨지는 그 추악한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고 싶다.

불길한 예감이 맞는 경우가 많아 내 예감이 적중할 것 같다. 정의가 욕망에 무너지는 것이 보인다. 정의가 자본에 좌절하는 것이 느껴진다. 정의가 권력과 돈에 의하여 무참하게 짓밟히는 것이 불길하게 현실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욕망하는 자들이 손을 번쩍 들고 승리의 함성을 지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저들은 좋겠다. 저들은 욕망하는 것들을 소유하게 됨으로 정말 좋겠다. 그래서 나는 떠나겠다. 차라리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는 것이 욕망하는 것을 얻는 것보다 더 자유로울 것 같아 그날 나는 떠나기로 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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