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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굿모닝몽골16 몽골학교가 한경직목사 기념상을 탔어요!

히브리서 11:1-6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며,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라 했다. 이것은 믿음에 대한 히브리서 기자만의 고백이 아니라 나섬과 몽골학교의 고백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제나 그런 믿음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섬과 몽골학교는 믿음을 현실로 만드는 공동체를 이루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고백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언제나 우리가 꿈꾸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현실이 되게 하셨고 그 현실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몽골학교를 건축한 후, 사람들은 어떻게 학교를 지었느냐며 놀라는 기색이다.
학교건축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나는 거의 죽다가 살아난 사람처럼 진을 다 빼야만 했다. 웃으며 말할 때에는 눈에 뵈는 것이 없어 했노라 했지만 실은 매일 울며 살았다. 나를 죽이고  녹여서라도 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차라리 내가 죽고 온몸을 녹여서라도 학교를 짓고 싶었다. 콘크리트 건물 하나를 짓는 것이 아니라 학교를 통하여 이루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먼저는 우리 학교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학교에 들어오려는 아이들은 많아도 받을 수 없는 여건이 무척 안타깝고 답답했다. 실제로 학교를 짓고 나니 아이들이 몰려왔다. 이전의 건물에서는 80명 이상 공부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300명이 넘는 큰 학교로 성장했으니 말이다.
작지만 아이들이 운동할 수 있는 농구장도 만들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운동하며 노는 모습만 보아도 나는 행복하다. 주변의 환경은 최고의 조건이다. 봄이면 벚꽃길에 꽃이 온통 지천이다. 5월이면 아카시아 냄새가 진동하며 장미넝쿨이 울창하다. 여름은 시원하고 바람이 잘 통하니 그만이고 가을이면 아차산 단풍으로 근사한 풍경이 연출된다. 겨울은 산길이 눈꽃으로 뒤덮인다. 앞에는 한강이 흐르고 뒤에는 아차산이 있는 배산임수이니 풍수로 따져도 최고의 학교다.
학교를 짓고 나니 세상에 이렇게 좋은 곳에 어떻게 학교를 지었는지 나도 모르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는 호텔을 지으면 그만이겠다 말하고, 또 어떤 이들은 혹시 최고급 빌라를 짓고 있느냐며 분양시기를 묻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는 몽골학교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 우리는 몽골학교를 지었다. 놀라운 일이다. 건축비 한 푼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채 시작한 몽골학교가 번듯하게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쉬움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만들고 싶은 것이 몇 가지 더 있었다. 돈이 없어 엄두를 내지 못하였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꼭 만들고 싶은 것이 있다. 그 첫 번째가 옥상에 태양광 에너지 발전소 일명 ‘햇빛발전소’를 세우고 싶었다.
1986년 4월이던가.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대재앙을 보면서 나는 반드시 햇빛발전소로만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전세계 모든 선교지에는 에너지주권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몽골학교에서부터 선교적 패러다임을 바꾸는 노력을 하고 싶었다. 몽골학교가 선교적 대안이며 새로운 선교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몽골학교 옥상에 햇빛발전소를 설립하여야 했다. 그러나 많은 돈이 들어야 하기 때문에 시작도 못하고 혼자 궁리만 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하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만하고 있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나는 도전하기로 하였다.
여기저기 설비업체를 찾았다. 가격을 알아보고 어떻게 하면 가능할 수 있을지를 찾아보았다. 간절히 바라면 하나님은 길을 가르쳐 주신다. 드디어 적당한 업체를 만났다. 상담을 하였다.
우리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 나는 돈이 없지만 햇빛발전소를 꼭 세우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설명했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에너지관리공단에 제안서를 보내보자는 것이다. 재한몽골학교 옥상의 햇빛발전소에 대한 제안서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제안서가 채택되었고 드디어 햇빛발전소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총공사비 약 1억 3만원 중 절반을 정부가 보조를 해 주는 조건이다. 우리가 비용의 절반만 충당하면 원하는 햇빛발전소를 세울 수 있는 것이다. 한시간당 51kw의 발전을 하는 발전소다. 우리 학교 건물은 총 900평이다. 연건평 900평이 사용하는 전기는 한 달에 약 1만kw를 넘는다. 물론 이런 예측은 치열한 에너지 교육을 통한 절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실제로 일반학교에서 가장 많은 운영비용은 전기세라 한다. 한 달에 드는 전기세는 학교를 운영해본 사람들에게는 가장 부담이 되는 항목이다.
나섬과 몽골학교의 재정적 자립 프로그램에서 가장 우선적인 방향은 우리안의 절약과 대안의 모색이다. 먼저 절약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에너지는 그중 가장 중요하다. 에너지 주권을 이루는 것이 우리가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첫 번째 조건이다. 나에게 경제적 자유와 재정적 문제의 자생력을 키우는 것은 마지막 목적지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오직 우리 스스로 살아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모든 외부 후원이 끊겨도 나섬과 몽골학교는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은 단 하루도 멈추지 않고 해야 했던 나만의 고민이며 의지다. 반드시 경제적 재정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공동체를 이루리라 꿈꾸며 살았다. 내가 구로공단에서 성수동 뚝섬으로 사역지를 옮겨와 갖게 된 문제의식이었다.
그리고 그 문제의식의 발로가 에너지 주권을 갖는 것이었으며 그 시작이 햇빛발전소의 설립이다. 하나님이 주신 태양의 에너지로만 살고 싶었다. 단전이 되고 세상이 어두워져도 나섬과 몽골학교는 언제나 빛이 있고 에너지가 흘러 다니는 새로운 자립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다.
몽골학교의 햇빛발전소는 작지만 새로운 대안이며 희망이다. 그렇게 새워진 우리 발전소에서 하루에 발전하는 전기는 약 300kw-350kw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의 80-90%를 자가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실제로 한국전력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전력만으로 우리 학교와 나섬의 전기 에너지를 자가발전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나의 꿈은 에너지 자립이다. 아니 경제적 자립이다. 경제적 자립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나섬과 몽골학교의 가장 큰 숙제다. 그중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다면 큰 숙제 하나가 풀리는 것이다.
전기 에너지가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에너지 자립은 또 다른 파생적 사역을 이루어낸다. 그것 중 하나가 버섯농장을 만드는 것이다. 버섯 농장을 만들려는 것도 경제적 자립을 위한 도전의 일환이다. 특히 선교지의 경제적 자립은 이제 필수 조건이다. 선교지의 상황이 한국교회의 상황과 연동되어 돌아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구도다.
현재 한국교회의 선교는 커다란 위기에 봉착되어 있다. 그것은 교회의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어려워지면서 선교지가 위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의경제와 연관되어 있고 그 교회의 상황이 선교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면 선교는 세상에 종속된다는 말이다. 이는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선교는 자립되어야 마땅하다. 선교지가 교회와 세상에 종속되거나 연동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선교는 독립적이며, 지속가능하게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선교는 독립적이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선교가 얼마나 전시적이며 세속적 목적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선교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정치적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교회와 목회자의 입장에 따라 일관성도 없고 지속적이지도 못한 선교를 해왔다. 미래 선교는 지속적이어야 한다. 교회와 목회자에 의하여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된다. 선교는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운동이다. 지속가능한 선교를 위하여 새로운 선교로 변화하여야 한다. 새로운 선교적 패러다임이 만들어져야 한다. 새로운 선교 모델은 두 가지다. 하나는 경제적 자립 선교이고 또 하나는 이주민 선교다. 나아가 한국 선교사의 파송이 아니라 현지인 중심의 역파송 선교로 이어져야 한다. 경제적 자립과 이주민을 통한 역파송 선교가 미래 선교의 모델이다. 나섬과 몽골학교가 지향하는 선교이기도 하다.
이러한 선교모델을 만들기 위하여 세워져야 할 것이 햇빛발전소이며 그 전기에너지를 이용한 버섯농장과 같은 자립선교 모델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것뿐만이 아니라 꿀벌을 키워 꿀을 생산하는 노력도 함께 하려 한다. 현재 우리 학교 옥상에는 열 개의 벌통이 있다. 하나의 벌통에 약 2만 마리에서 6만 마리의 벌들이 있으니 우리 학교 옥상은 벌들의 천국이다. 벌은 몽골의 초원을 보면서 생각한 것이다. 몽골 초원의 엄청난 야생화를 보면서 벌과 꿀을 생각했다. 야생화에서 꿀을 따는 꿈을 꾼 것이다. 우리 학교가 있는 아차산은 꽃들이 지천이다. 벚꽃과 아카시아와 밤나무와 장미꽃까지 온통 꽃이다. 벌들이 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인가?
몽골 학생들에게 햇빛발전소의 원리를 가르치고, 그 에너지를 이용하여 버섯을 키우고 꿀을 따는 하나님 나라의 모델을 만들고 싶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여야 한다. 바로 제과제빵 설비다. 제과제빵도 전기가 필수다. 전기만 있으면 수많은 선교적 사역이 가능하다. 버섯도, 제과제빵도 가능하다. 전기에너지를 자생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큰 힘이다. 그러나 제과제빵 시설을 하려면 만만치 않은 재정이 필요하다. 적어도 수천 만 원의 재정이 드는데 우리로서는 큰 숙제다. 이미 옥상에 햇빛발전소를 세우는데도 적지 않은 재정이 필요하고, 버섯농장을 만드는 것도 작은 일이 아니다. 여기에 제과제빵 설비라니! 이 모든 것을 하려면 엄청난 재정이 필요하다.

어느 날 우리 교회 최 장로님이 신문에 난 광고를 오려가지고 오셨다. 무언가 보니 한경직 목사 기념재단에서 ‘한경직 목사 기념상’을 공모한다는 내용이다. 상금이 자그마치 오천만원이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 상을 받으면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겠다.’ 도전하는 거다. 누가 받을지 결정된 것이 아니니 우리가 받을 수도 있다. 한번 도전해서 부딪혀 보고 싶었다.
공모에 응모하고 기다리면서 몇 분에게 기도와 도움을 요청했다. 특히 이광순 교수님에게 도움을 청하니 이 교수님의 기도와 관심이 시작되었다. 대단한 추진력의 은사를 가지신 분이 이 교수님이시다. 그로부터 얼마 후 연락이 왔다. 최종 면접까지 올랐다 한다. 마지막 최종 면접에 참석해 보니 막강한 단체들만 뽑혔다. 자신이 없었다. 거기까지 오른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싶었다. 엄청난 사역 단체들만 면접을 하는 곳에 몽골학교가 참여한 것이다. 우리는 너무 작아 보였다. 보잘 것 없는 몽골학교가 최종면접까지 오른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목에 교통위반을 했다며 교통경찰에게 벌금을 부과 받았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이건 무슨 사인인가 싶어 기도를 했다. 이 교통벌금이라도 아깝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혼자 그렇게 기도를 했다. 속으로는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몇 시간이 흐른 뒤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몽골학교가 한경직 목사 기념상 최종 합격자가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웃다가 눈물이 났다. 정말인가 싶어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 그렇다 맞다. 우리가 한경직 목사 기념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상금이 오천만원이다. 우리가 받게 되었다.
4월 중순 어느 날 영락교회에서 한 목사님 추모 기념예배와 기념상 수상식이 열렸다. 몽골학교의 이름을 부른다. 아내의 손을 잡고 강대상으로 올랐다. 상패를 받고 상금도 꽃다발도 받았다. 눈물이 났다. 먼저는 하나님께 감사했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수상소감을 말하라고 한다. 무조건 감사했다.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국교회의 거목이신 한경직 목사님을 기념해 만든 상을 우리가 받았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리고 상금으로 받은 오천만원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즈음 온누리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이것 또한 생각지도 않은 일이다. 부활절을 앞두고 고난주간 예배에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한마디로 나섬과 몽골학교를 알리는 엄청난 기회가 되었다. 그 후 온누리교회 의 이재훈 담임목사님이 우리학교 예배에서 몽골아이들에게 설교를 해주셨으며, 우리학교를 위해 목적 헌금을 해주셨다. 그런데 그 헌금액수는 정확히 옥상의 햇빛발전소를 만드는데 필요한 금액 만큼이었다.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절반을 보조받지만 나머지 절반을 자부담해야 하는데 그 금액만큼 헌금을 보내주신 것이다. 계속하여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뿐 아니다. 어느 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전화가 왔는데 어느 기업에서 우리 학교로 지정기탁을 했다는 것이 아닌가! 그 기업의 지정기탁을 통해 버섯농장을 세우는 일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햇빛발전소, 버섯농장, 제과제빵 설비까지, 우리의 꿈이 현실이 되는 놀라운 일이 잇달아 일어났다.
나는 꿈을 꾸고, 그 꿈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으며, 그 꿈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새로운 선교 모델이 될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우리가 한 것은 믿음의 고백뿐 아무 것도 없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백을 현실이 되게 하신 것이다.

창세기 37:5-11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요셉은 꿈꾸는 사람이다. 그 꿈이 요셉을 고난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어떤 고난도 꿈을 가진 사람을 무너뜨릴 수 없다. 꿈은 비전이며 그 꿈은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하다. 때로는 현실적이지 못하다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의심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꿈을 꿔본 사람만이 그 꿈의 의미를 안다. 나는 요셉이고 싶었다. 요셉처럼 꿈을 꾸고, 비록 갖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언젠가 반드시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았다.
요셉은 애급의 노예로 팔려가는 운명을 맞이했고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아 모함을 당하며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모진 고난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결코 망상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그 절대적 믿음만이 우리를 존재하게 한다.
몽골학교를 세워가면서 내가 꾸었던 꿈들은 모두 의미 있는 것들이었다. 학교를 건축하고 학교 옥상에 햇빛발전소를 세워 에너지 주권을 갖는 것과 그 에너지를 통한 새로운 경제적 대안을 찾아가는 것을 꿈꾸었다. 제과제빵 시설을 갖추어 우리 아이들이 몽골에 돌아가서도 얼마든지 자기만의 직업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싶은 꿈을 꾸었다. 몽골의 미래 산업과 기술이 우리 학교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몽골 초원의 광대한 땅위에 세상을 살리는 햇빛발전소가 세워지고 그 전기로 몽골을 살리며, 나아가 몽골에 평화 선교센터를 세워 한반도 통일로 연결되도록 하는 꿈을 꾸었다. 
초원에서 벌들이 꿀을 따고 그린 전기 에너지로 빵을 굽는 꿈들이 하나씩 이루어지고 있다. 남은 것은 경제적 재정적 자립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 오실 때까지 나섬과 몽골학교의 모든 사역이 멈추지 않고 온전히 세워져 가는 것이 나의 마지막 희망이다. 나는 그 꿈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희망을 잃어버린 한국교회의 특수 목회현장과 선교지에 희망과 대안이 있다는 사실을 몽골학교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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