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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굿모닝몽골4 재한몽골학교를 세우다(1)

재한몽골학교를 세우다

 

에베소서 6:21-22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우연은 없다. 다만 우연을 가장한 필연만 존재할 뿐이다. 내 삶에는 수많은 우연이 있었다. 그 중 내게 가장 소중한 우연, 아니 필연 같은 만남은 몽골인과의 만남이며 또한 그 자녀들과의 만남이다. 그리고 그 만남의 시작은 언제나 골목 끝에서였다. 오갈 곳 없는 나그네를 만나는 곳이란 막다른 골목이 아니고서는 만나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통은 새로운 시작이다.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는 국내 나그네들 전체의 위기가 되었지만 한편 그것은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문제 안에 답이 있었다. 그 답의 본질은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아보라는 하늘의 권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다면 그 고난은 새로운 기회다. 나는 그 고난 속에서 희망을 찾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외환위기가 일어나고 갑자기 불어 닥친 삶의 고단함, 그리고 불안함은 나그네들의 삶에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세상에서 갈 곳이 없는 자들이 찾아갈 곳이란 교회가 전부였다. 그 당시 나섬공동체는 강변역 지하실에 있었다. 우리에게는 70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 전부였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 공간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결국 그 작은 공간은 세계를 품고 고통당하는 자들의 쉼터가 되었으니, 공간은 크기가 아니라 공간 안에 거주하는 자들의 마음만큼의 의미가 있을 뿐이다. 공간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속안에 숨겨진 사랑이 진정한 공간이다. 역사는 크기가 아닌 사랑으로 인간을 평가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의 크기가 아니라 교회 안에 담겨질 사랑의 크기가 더 중요하다.

 

나섬은 작지만 우리 안의 사랑은 작지 않다. 우리의 존재이유는 오직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자들의 편에 서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바로 외환위기다. 모두가 공황상태가 되었다. 경제적 불황은 작은 자들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나섬에서는 무료급식을 시작했다. 점심이라도 함께 나누는 실천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19981월부터 우리는 본격적인 무료급식 사업을 시작했다. 특별히 외국인근로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한국인 노숙자들은 서울역이나 청량리 역전에서 얼마든지 무료급식을 제공받을 수 있었지만 외국인 노숙자들에겐 그 일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우리의 무료급식 사역은 매우 의미 있는 사역이 되었다. 많은 노숙자 외국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어디서 들었는지 한국인 노숙자들까지 엉키어 우리의 점심시간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지하실 작은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고 그곳에서 밥을 나누는 장면이란 한마디로 눈물겨움이었다. 누가 봐도 노숙자보다 결코 낫지 않은 나섬이 그들에게 밥을 주는 것에 의문을 품었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행복하게 그 사역을 감당했다.

 

1999년이 시작되었어도 여전히 외환위기의 여파는 가라앉지 않았다. 특별히 외국인들에게 외환위기는 곧바로 실직과 고통으로 이어졌다. 그들 중 차라리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나은 편이다. 문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오면서 빚을 지고 온다. 비자를 얻기 위하여 브로커들에게 적게는 수 백 만원에서 많게는 수 천 만원까지 주고 왔으니 돈을 벌지 않고 돌아간다는 것은 곧바로 죽음 같은 상황에 몰린다는 것이다. 무슨 힘으로 빚잔치를 할 것인가? 차라리 한국에서 노숙자로 살아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당시 돌아가고 싶어도 일 년 불법체류에 약 100만원이라는 벌금을 내야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었으니 누가 감히 돌아가겠다고 출입국관리소에 찾아갈 것인가?

그래서 우리의 무료급식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자구책 같은 것이었다. 나도 노숙자 같은 인생이었지만 그들보다 조금은 낫다고 생각하니 밥을 나누고 싶었다. 열심히 밥을 지어 나누었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밥을 지었다. 그때에 점심시간마다 몇몇의 아이들도 찾아와 밥을 먹는 것이 보였다. 너희는 누구냐고 물으니 몽골 아이란다. 왜 여기에 와 밥을 먹느냐 물으니 엄마 아빠는 공장에 나가 없고 갈 곳이 없어 여기 왔노라 했다.

왜 학교에 가지 않느냐고 물으니 갈 곳이 없단다. 한국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아 공부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다. 그런데 부모를 따라 한국까지 온 이 아이들은 정말 고아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의 부모는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를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공감하는 힘은 곧바로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 몽골 아이들에 대한 공감의 힘은 나로 하여금 학교를 시작하게 한 것이다. 고아 같은 아이들을 보면서 이것도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가보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어떻게 학교를 만들 것인가? 처음부터 학교를 시작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당시에는 몽골 아이들에게 작은 공간이라도 만들어주어 한글교실 같은 대안학교를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에 경험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여야 하는지 난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감동을 받으셨나보다. 뜻밖에 길이 보였다. 두 사람이 내게 나타난 것이다. 한 분은 당시 홀트아동복지회의 회장이셨던 송재천 목사님이고, 또 다른 분은 남대문 교회의 이일모 장로님이었다. 두 분은 재한몽골학교 개교에 있어 결코 잊을 수 없는 분들이다.

송 목사님은 이전부터 깊은 관계가 있는 선배다. 1990년 군목을 전역하고 찾아간 기독교아시아연구원에서 목사님을 만났었다. 일찍이 기독공보 기자로 시작하여 늦게 목사가 되신 송 목사님이 마침 홀트아동복지회의 회장이 되셨다. 홀트아동복지회의 회장이라면 혹시 우리 몽골학교를 도와주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트아동복지회는 입양기관이다. 그러나 어쨌든 아동이라는 말이 들어갔으니 무조건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려고 연락을 드렸다. 송 목사님은 이 일도 홀트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당시 염 과장이라는 분을 보내주셨다. 염 과장은 참으로 귀한 분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홀트에서는 먼저 자원봉사자들을 구해 주었다. 여기저기서 우리 몽골 아이들을 가르칠 교사들을 찾아준 것이다. 뿐만아니라 학교운영을 위한 후원자들을 모아 주었다. 홀트가 앞장서지 않았다면 학교를 만들 엄두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도 무척이나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또 한 분은 이일모 장로님이다. 장로님은 일찍이 몽골사랑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며 몽골선교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셨다. 그것도 우연이었을까? 아니다, 정말 그것은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 속에서 만난 필연이었다.

내가 지금도 기억하는 또 한 분은 이 장로님이 소개한 손 집사님이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던 손 집사님은 우리 학교 운영에 큰 도움을 주신 분이다. 그러나 집사님은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먼저 하늘나라에 가셨다. 몽골학교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 같은 분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천사 같은 이들의 후원과 동역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몽골학교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몽골학교가 존재할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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