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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외국인근로자, 투쟁인가 선교인가?


기독교 선교에 있어 인권과 선교의 경계선을 긋는 것은 매우 민감하고 소모적인 일인 것처럼 보인다. 뿐만 아니라 선교의 개념과 한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인권과 선교의 관계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외국인근로자를 바라보는 교회와 목회자의 입장 차이가 외국인근로자들을 통한 사회적, 선교적 비젼이 달라진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구별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외국인근로자들을 돌본다는 의미가 과연 무엇인가에 따라 결과론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초기 외국인근로자선교 현장을 주도했던 사람으로서, 나는 그 시절 목회자의 입장과 자세는 인권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나그네들을 위하여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시절인지라 그들의 생존권과 삶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여도 사회적으로 그들의 권익을 보호해줄 아무런 장치나 조직력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교적으로도 명동성당에서 일부 관심을 갖고 있었을 뿐, 외국인근로자들을 돕는 대부분의 인자는 목회자가 중심이었다. 당시 외국인근로자들을 돕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사회적으로도 소외와 그늘진 노동자, 장애인, 도시빈민이 있는데 외국인근로자 문제까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뿐만아니라 우리 노동자 문제에 개입하던 목회자들, 소위 산업선교나 민중교회를 목회하던 목회자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았다. 외국인근로자들이 있음으로 우리 노동자들의 노조설립과 임금상승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근로자들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있었다.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도 제한되어 있었고, 제한된 사람들마저 한계를 느낄 만큼 열악한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인권은 곧 선교요, 선교는 곧 인권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1995년을 기점으로 외국인근로자 문제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빈민선교나 민중교회를 담임하던 목회자들이 대거 외국인근로자 선교로 유입되고, 동시에 외국인근로자들을 돕자며 상당히 많은 시민단체가 결성되고, 특히 민노총 같은 노동운동 단체에서도 외국인근로자도 같은 노동자라며 그들을 돕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산업선교나 민중교회를 담임하던 목회자들이 중심이 되어 외국인근로자 문제를 노동문제의 한 축으로 또는 인권문제의 사각지대로 우리 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그들의 노력은 빛을 발했고, 또한 그 운동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상당히 많은 외국인근로자들을 통한 운동의 지원세력과 연대세력은 힘을 얻고 나름대로 기반을 마련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들의 노력과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이제 목회자로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젠 인권운동이 목적이 아니라 선교와 목회가 중심이 되는 외국인근로자 선교를 제안하는 바이다. 초기 선교현장에서 목회자들의 노력과 헌신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기득권이 되거나 사회적으로 자신의 운동을 지속하려는 모습은 목회자로서 적절하지 않게 보인다는 개인적인 소신 때문이다. 이젠 목회자로서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특히  외국인근로자들을 데리고 농성이나 시위를 하는 경우, 참여한 외국인들 뿐만아니라 상당히 많은 수의 외국인들이 동조하게 되는데, 그 결론은 우리 사회에 대한 극단적인 분노와 몰이해로 연장되곤 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목회자들이 외국인근로자들의 문제를 과대포장 혹은 거두절미하여 사회적 이슈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인근로자들의 문제가 현실과는 상당히 왜곡되어 전달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나 혼자만의 문제일까? 

나는 이제 적어도 외국인근로자들의 선교와 삶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목회자 그룹은 다시 목회와 선교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분노와 절망감에 휩싸인 나그네들을 위로하고 돌보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 것이다. 

나그네들의 분노와 적대감을 부채질하는 목회자가 아니라 그들의 아픔과 분노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목회와 선교의 자리가 더 중요하고 필요한 목회자의 사명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그네들을 돕는 것의 유형은 같다. 그러나 목회자의 입장이 어떤 자세인가에 따라 그 결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반한주의 인권단체로 낙인찍히는 것이 무슨 별을 다는 것처럼 느끼는 목회자나 선교단체는 내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젠 솔직해져야 한다. 그것이 기득권 때문이 아닌가? 
선교는 인권을 포괄한다. 즉 인권을 포함하는 포괄적 선교는 옳다. 그러나 인권이 우선시 되거나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인권보다 선교가 더 우선이다. 인권은 선교의 소극적 도구일 뿐이다. 
이젠 다시 선교와 목회의 자리로 돌아오는 외국인근로자선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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