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짐 콜린스의 '좋은 리더를 넘어 위대한 리더로'라는 책을 읽었다. 예전에 읽었는데 다시 그 책을 읽는 것은 나의 마음과 상황이 달라졌다는 의미다. 이미 읽었던 책이지만 오늘은 새롭게 느껴졌다. 내게 다가온 구절은 콜린스의 멘토로 언급된 빌 레지어에 관한 것이다. 빌은 콜린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고 리더십 분야에 탁월한 사람이었으며, 짐 콜린스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사람이다. 책의 도입 부분에 빌이 매우 심각한 병으로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된 내용이 나오는데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스스로 마지막임을 느끼고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며 자신이 '위대한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빌은 다시 살아났으며, 이후의 삶을 보너스라 여기며 살았다고 한다. 인생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함을 가르쳐 준다. 빌은 짐 콜린스가 세계적인 작가, 리더십 전문가로 성장하도록 키워준 인물이다. 빌은 위대한 인생을 살았고 마지막에 웃을 수 있었다. 그 정도로 행복한 삶을 산 것이다. 행복한 자가 마지막에 웃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마지막의 순간에도 미소를 지었다는 사실은 내게 큰 도전을 준다. 나로 마지막에 웃는 자로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 정말이지 그처럼 마지막에 웃을 수 있기를 위하여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고 싶다.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항암치료를 시작하며 매일 매일이 감사하고 순간순간 간절한 마음이 든다. 시간을 아끼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깊은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살고 싶다. 마음을 열고 말씀 한 구절도 깊이 묵상하고 하늘에서 들려주시는 영감을 받고 싶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문이 떠오른다.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자유인으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지금까지 허물 많은 인생을 살았다. 사람들에게 상처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암 진단을 받고 죽음의 길목에서 삶을 돌아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아등바등하며 살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조금 더 참았더라면 더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았을 것을 하는 후회가 된다. 조금 더 넉넉히 베풀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든다. 혼을 내기보다 칭찬을 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 더 간절하게 그러나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내 열정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더 깊이 고민하며 살고 싶다.
사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예수의 삶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가 내 삶의 주인이시고 그리스도시며 선생이심을 고백하지 않았던가. 예수께로 더 다가서야 한다. 예수가 답이다! 우리 삶에서 마지막이 가장 중요하다. 잘 죽어야 잘 산 것이다. 그것이 내가 즐겨 말하던 삶의 방식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렇게 살았는지 되묻는다. 이제는 정말 잘 죽는 길로 가야 한다. 조금 빨리 가든 늦게 가든 그것은 별 의미가 없다. 33세의 너무 젊은 나이에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했다. 위대한 인생을 사신 그를 우리는 믿고 바라보며 감사하고 눈물을 짓는다. 나도 그가 살았던 삶의 방식이 좋아 그의 제자가 되고자 했었다. 지금은 처음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고 잊어버린 은혜를 기억하며 남은 삶을 더 나은 삶으로 살기 위하여 다시 시작하련다. 마지막에 정말 웃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도 그리 살고 싶다. 빌 레이저처럼 마지막 순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삶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