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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마드톡643_지치지 말아야 한다.

몽골학교 졸업식 날인데 자꾸만 마음이 불편해진다. 왠지 모를 불안함과 답답함에 한쪽 눈이 아프고 머리도 아파온다. 눈이 안 보이면서 생긴 증상 중 하나가 마음이 불편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글을 쓰거나 설교를 준비하는 일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 책을 귀로 듣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다. 오늘은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고 답답한지 긴 한숨만 내쉬고 있다.

오늘 새벽에는 졸업식을 준비하는 아내를 생각하다가 문득 살아온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았다. 그런데 30대에서 60대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조각조각의 일과 사건은 떠오르지만 지난 30년의 기억은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살았다는 것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다. 구로동에서부터 시작된 이주민 사역은 성수동을 거쳐 구의동으로 그리고 여기 광장동에 이르렀다. 공동체를 세워가는 동안 무너질 듯한 위기의 순간이 많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다. 몽골학교 졸업식이 있는 날이면 나는 언제나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는 버릇이 있다.

이주민 사역을 하면서 가장 큰 위기는 구로동에서 사역 도중 눈에 문제가 생긴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문제가 생긴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운전 중 갑자기 눈앞이 안 보이는 증상이 생긴 것이다. 사람을 보지 못하여 사고가 날 뻔하였다. 가슴이 덜컹했다. 왜 이러지? 하면서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안경을 닦고 또 닦으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시력을 조금씩 잃어갔고 이제는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다.

보지 못하는 삶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한편 자유하다. 마음은 아프지만 그럼에도 감사함을 찾아간다. 그렇게 이기며 살아간다. 아프면서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라는 최소한의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죽는 날까지 이런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힘들지만 마음을 다스리고 믿음을 지켜 고통의 나날을 이겨야 한다. 그럼에도 나의 실존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시느냐고 자꾸만 묻고 싶은 것이다.

두 번째 위기는 성수동에서다. 그때는 사실 위기가 아니라 행복한 날들이었다. 가장 가난했고 외로웠지만 가장 행복한 사역자로 살았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어 이길 수 있었다. 아내도 아이들도 그때를 기억한다. 그 시절이 좋았다. 아이들과 처음으로 제주도에 가족 여행을 떠난 것도 그 시절이었다. 아내는 제주도 함덕 해수욕장에서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낚아 올렸다. 그것으로 점심을 먹었다. 아이들도 나도 놀랐다, 아내는 거의 낚시의 달인이었다.

매일 저녁 퇴근 시간이 되면 나는 전철을 타고 뚝섬에서 집 근처의 전철역에 내렸고 아내와 아이들은 나를 마중하기 위하여 장미꽃 넝쿨이 가득한 아름다운 길을 걸어왔다. 나는 아이들을 길 중간에서 만났다. 아내도 좋아하고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소리 내어 웃지는 않았다. 아내의 웃음소리가 듣고 싶다.

그런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것일까? 사실 그때는 젊었기에 위기가 있었지만 이길 수 있었고 그만큼 당당할 수 있었다. 당돌하리만큼 자존감으로 충만했었다. 그때부터 아마 50살 중반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하루하루 지치지 않고 일했었다.

그리고 세 번째 위기는 지금인지 모른다. 내가 지쳤기 때문이다. 몸도 마음도 쉬고 싶다. 여기저기 문제가 생기고 병원에 가는 날들이 늘어난다. 아마 죽는 날까지 이렇게 병원을 오가며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문제는 마음이다. 마음이 불편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행복하다는 마음이 점점 식어간다. 왜 이럴까? 가난했던 시절도 살았는데 지금 나는 왠지 답답하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과거는 과거일 뿐 아무리 행복한 시간이라 해도 지금이 낫다. 분명 지금이 더 좋다. 조금도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늙었지만 지금이 나은 것이다. 문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없다는 답답함일 것이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지만 그럴만한 능력도 힘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몸은 아프고 마음은 빨리 일하라 재촉하나 할 수 없는 현실이 더욱 힘든 것이다.

 

 

이제는 나 혼자 일하고 길을 만들 것이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가야 한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멈추는 날이 오더라도 내가 온 길을 계속 이어갈 누군가와 함께 가야 한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가? 오늘 답답하고 불편했던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요즘 들어 더욱 그런 생각이 깊다. 사람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까지 함께 할 동행자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지치지 말아야 한다. 죽는 날까지 일했던 모세의 길을 따라야 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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