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이주민 선교학교를 구상했다. 우리나라 최초 이주민 사역자로서의 의무감이며 미래교회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나는 길은 선교적 교회로 거듭나는 것밖에 없다. 이제는 성장하고 부흥하는 과거 교회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오롯이 예수께서 보여주신 선교적 모델이 교회와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한다. 예배당을 짓고 부흥하면 그 예배당을 무너뜨리고 다시 건축하는 반복된 교회의 모습은 더 이상 교회의 존재 이유가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아펜젤러와 호머 헐버트 선교사는 'MM(Making Man)'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말 그대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선교다. 즉 사람을 키우는 것이 선교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키우고 역(逆)으로 파송하는 나섬의 선교적 사역은 그런 선교 철학에 근거한 것이다.
당면한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교회가 가야 할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이전의 구태의연한 성장주의를 과감하게 폐기하고 질적 변화를 추구하여야 한다. 과부, 고아, 나그네와 같은 이들을 목회와 선교의 대상으로 삼고 그들을 통하여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따라가야 한다. 성을 쌓는 교회는 망한다. 오직 길을 만드는 교회만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성을 쌓던 교회는 이제 성을 허물고 길 위로 올라와야 한다. 오직 예수께서 사셨던 선교적 삶을 배워야 한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선교다. 선교하는 교회는 살아남았고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니다. 종교개혁 이후 카톨릭 내부에서 개혁의 대상이 된 자신들의 교회를 반성하고 찾아낸 답이다. 그래서 새롭게 탄생한 선교단체가 예수회다. 예수회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잃어버린 선교적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선교단체다. 예수회는 중남미 특히 브라질을 비롯하여 일본과 인도 선교를 주도했으며 예수회 선교사였던 마테오리치가 중국에 들어와 우리나라 초기 카톨릭 선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예수회가 우리나라에 직접적으로 들어온 것은 1886년경이었는데 가장 먼저 시작한 사역이 학교와 병원을 세운 것이다.
아펜젤러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885년 부활절 아침이었는데 그는 배재학당을 세워 우리나라 교육 선교의 시작이 되었다. 그 후 경신학원과 이화학당 등 초기 선교사들이 곳곳에 학교를 세워 교육을 통하여 조선 후기 사회개혁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근대화에 크게 기여 하였다. 그때의 교육 선교가 오늘날 한국교회는 물론이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나는 26년 전인 1999년 재한몽골학교를 세웠다. 몽골학교의 존재 의미는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주민 선교학교를 통해 그동안의 이주민 교육 선교에 대한 실제적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두 번째로 이주민 선교학교에서 강조하려는 것은 역파송 선교다. 역파송 사역은 이주민 선교의 마지막 목적지라 할 수 있다. 나는 1993년 ‘역파송’이라는 말을 한국교회에 처음 소개하였다. 그 당시에는 역파송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나는 역파송 선교가 이주민 사역의 본질이라고 판단했고 역파송 선교를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그 결과 역파송 선교가 얼마나 효과적이고 의미있는 선교사역인지 경험하고 있으며 이를 한국교회에 보여주고 싶다. 할 수 있다면 역파송 선교 현장에 직접 방문하여 함께 그 의미를 나누고자 한다.
교회의 역동성은 나누고 섬기는 선교적 삶을 통하여 회복된다. 이주민이 들어온다. 그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고 그 비중도 커지고 있다. 이주민이 아니고서는 우리의 미래가 없을 정도로 우리는 심각한 인구절벽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이주민의 역할이 지대하다. 우리는 무조건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할 운명이다. 이제는 이주민의 시대다. 이주민의 존재는 교회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이들이 교회의 역동성을 되살릴 것이며 교회와 교인들을 선교적 삶으로 인도할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들에게 있다. 그래서 나는 이주민 선교학교를 시작하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