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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마드톡514_제3국 탈북자 캠프에 다녀오다

지난 며칠 동안의 경험은 내 삶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너무도 생소하고 특별한 경험을 하였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을 만나는 것은 일상이며 그들의 삶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도 특별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북한에서 왔다는 것은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 며칠 동안의 경험은 너무도 강하게 내 마음에 남아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비밀리에 탈북자들을 섬기고 돌보는 곳이 있었다. 3국이라고 해야만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들의 은신처를 방문하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사진도 마음대로 찍을 수 없었다. 우리가 방문한 탈북자 캠프에는 길게는 8개월에서 짧게는 8일 전에 그곳에 들어온 탈북자 14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그들 중 몇 명은 머지않아 캐나다로 출국한다고 한다. 우리가 첫 번째로 방문한 캠프에서는 캐나다로 가는 그들을 파송하는 예배와 세례식, 성찬식, 세족식이 3시간에 걸쳐 매우 은혜롭게 진행되었다.

나는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는데 예배가 끝나고 인사하는 자리에서 한 탈북 여성으로부터 강의가 좋았다는 인사를 받았다. 설교를 강의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성경은 물론이고 기독교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배의 의미도 모르고 복음을 들어본 적도 없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신앙생활에 대하여 가르쳐주는 선교사들의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탈북자들이 처음 그곳에 들어오면 서로 심하게 다투고 갈등이 일어나 적응하는 동안 너무도 힘들다는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모르고 살아온 것들이 너무 많았음을 깨달았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왔지만 그들의 삶은 너무도 비루하고 고통스러운 삶이었다. 중국으로 넘어오자마자 인신매매를 당하고 강제로 알지도 못하는 중국 남자와 어딘지도 모르는 시골에서 노동을 하며 아이를 낳고 살아야 했던 탈북 여성의 삶은 너무도 비극적인 것이었으리라. 그러므로 더 이상 중국에서도 살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또다시 강을 건너야 하는 그들에게 남은 것이 악다구니뿐임은 당연한 것이다. 처음부터 그들이 악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처한 상황이 가장 밑바닥의 생존본능만 남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 탈북 여성들이 세례를 받기 전 각자의 삶의 이야기를 적은 간증문을 읽는 동안 누구도 예외 없이 눈물을 흘리며 아프고 슬픈 그들의 삶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려야 했고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정말 이것이 인간의 삶인가? 하나님께 여쭙고 싶었다. 이념과 정치권력, 몇 사람의 탐욕과 그들의 지배로 인한 인권의 문제와 생존과 죽음을 떠올려야 했다.

두 번째 날 우리가 찾아간 곳은 도심지에서 조금 벗어난 한적한 곳이었다. 그곳 캠프에서 만난 탈북자들과 그들을 섬기는 목회자들의 모습은 조금 다른 느낌을 갖게 했다. 그곳에서는 지쳐버려 숨길 수 없는 그대로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순수함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도전이었다. 나를 매우 아프게 하는 삶들이 모여 있었다. 목사도 탈북자도 모두가 산다는 것에 대하여 고민하게 하는 곳이었다. 그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나는 목사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왠지 다시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었다. 그곳을 돕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내 마음이 멈춘 그곳에서 다시 평화와 통일 아니 그런 말로 치장하는 것들을 버리고 싶었다. 그냥 인간이고 싶었고 맨 밑바닥의 자리로 내려가고 싶었다.

나는 그동안 너무도 모르면서 아는 체하고 살았다. 북한도 모르고 탈북자도 모르면서 사역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퉁 쳐 버린 것이다. 모든 것의 우선은 인간이어야 한다. 삶이어야 하고 인권이어야 한다. 그냥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우리는 그들 앞에 서는 것일 뿐 통일이니 평화니 하는 멋진 언어로 분칠한 사역이 아니어야 했다. 나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말이 떠올랐다. 부끄러웠고 창피하고 미안했다. 너무 많이 종교의 언어로 포장했음을 회개했다. 예수님은 그렇게 말로만 사신 것이 아님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예수께서 종교와 목회자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신 것은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너무 위선적이며 가식적으로 사역을 했다. 나부터 보여주기 위한 사역이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진정성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며 다시 시작하고 싶다. 처음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솔직하게 고백하여야 한다. 나는 그곳에서 만난 이들을 통하여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나의 거울이었다. 그곳에서 나를 보았다. 다시 나를 찾고 싶다. 탈북자들과 그들의 비밀 캠프에서 목회자로 아니 한 인간으로 살고 있는 이들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불과 며칠 전의 만남과 눈빛, 어투와 지친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다시 마음이 아프다. 눈물이 난다. 왜 이리도 내 마음이 흔들리는지 모르겠다. 이토록 마음 아픈 날들이 없었는데 그들을 떠올리면 이상하리만치 가슴이 먹먹하다. 무엇일까? 왜 이럴까? 정말 이상한 일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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