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육의 힘을 믿는다. 교육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이며 선교적인 사역이다. 특별히 미래 교육은 지식 교육만이 아님은 이미 드러났다. 모든 지식은 이제 손가락 한번만 클릭하면 언제 어디서든 가르쳐 주는 시대다.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교육은 이미 그 힘을 잃었으며 그런 측면에서 학교교육은 그 의미를 상실했다. 더 이상 학교교육의 시대는 끝이 난 것이다. 지금과 같은 학교교육의 패러다임으로는 미래의 인재를 키워낼 수 없다. 한마디로 교육의 부재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부실 시공된 건물은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제대로 세워지지 않은 부실한 건축물은 작은 지진에도 붕괴될 것이다.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이다. 마치 건물을 세우는 것처럼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기초가 단단하고 건강한 인격과 성숙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키우는 대안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는 다양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다양성은 다양한 교육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성의 시대에는 반드시 교육의 사각지대도 존재하게 되는데 그것은 공교육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문제다. 여기에 더해 기독교 교육은 어떤가? 한마디로 기독교 교육이 존재하는가를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은 교회 교육은 끝이 난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할 것이다. 공교육에 잡아먹힌 기독교 교육의 현실은 교회의 존재의미가 그만큼 상실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을 버릴 수 없다. 다시 기독교 교육의 힘을 믿으며 새로운 꿈을 꾸어야 한다. 사각지대의 존재감 없는 이들과 청소년을 위하여 나섬이 나서야 한다. 새로운 비전 학교를 꿈꾸는 것이다. 이는 장애인과 다문화 가정의 청소년 그리고 몽골학교 이외의 아시아의 청소년들을 위한 것을 말한다. 여기에 더해 제대로 된 기독교 교육에 기초한 인문학 그리고 선교적 삶을 살아가려는 많은 청소년들을 위한 길 위의 학교까지를 구상중이다.
나는 길을 만드는 목회자다. 성을 쌓지 않고 길을 만들어 가는 인생을 살고 싶어 노마드 유목민 목회를 하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나섬의 사역을 하면서 고난도 당했고 아픔도 많았다. 시력도 잃어 눈에 뵈는 것도 없다. 주류 목회가 아닌 까닭으로 소외도 당했으며 무시도 당하였다. 멸시와 편견의 시선으로 말로 다할 수 없는 차별도 당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끊임없이 꿈을 꾸었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하여 열정적으로 살았다.
이제 다시 길을 만드는 현장으로 돌아가련다. 밑바닥에서부터 여기까지 왔으니 많이도 왔다. 그러나 그것이 성(城)이나 기득권이 되어서도 안 될 일이니 나는 다시 내려간다. 길 위의 인생으로 살기 위하여 밑바닥 현장으로 내려간다. 아니, 길 위의 학교를 만들기 위하여 길 위로 올라간다. 길 위의 학교를 만드는 일에 함께 할 동행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얼마나 힘겨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길을 만들어 가는 삶을 살아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