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7 : 45-49
45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46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47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48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또 하나의 교훈은 학교를 짓는 일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건축은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라 판단했다. 세상은 건축을 그렇게 한다. 사람이 건물을 짓고 자기 이름을 내세우고 자기의 힘을 보여준다.
마천루의 저주라는 것이 있다. 마천루의 저주란 초고층빌딩을 건설한 후엔 경제 파탄이 찾아온다는 속설로 이는 여러 가지로 증명되었는데 어쩌면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례가 종종 있어왔다. 신동아가 지은 63빌딩도 그렇고, 최근 롯데의 초고층 건물이 지어진 이후 롯데의 형편도 그렇다. 사실 교회도 건축을 하고 나면 목사님이 자리를 옮겨야 하거나 혹은 교회 내에 내분이 생겨 심각한 시험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건축을 사람이 하는 경우에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만약 우리 학교도 그렇게 성급하게 인간적인 방법으로 지으려 했다면 그런 위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건물은 사람의 삶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래서 인간은 건물을 짓고 그 것을 자신의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내세운다. '내가 이 정도로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건물이니 그런가 보다. 그런 의미에서 건물을 짓는 것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교회의 건축에도 목회자의 욕망이 자리 잡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더 크고 웅장한 예배당을 짓고 그 예배당이 한 목회자의 권력과 힘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는 것이다. 크고 화려하면 그것은 그만큼 그 교회의 목회자가 센 사람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모두가 우상을 짓는다. 자기만의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다.
신명기 9 : 15-17
15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산에는 불이 붙었고 언약의 두 돌판은 내 손에 있었느니라 16내가 본즉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급속히 여호와의 명하신 도를 떠났기로 17내가 그 두 돌판을 내 두 손에서 들어 던져 너희의 목전에서 깨뜨렸었노라
나도 그런 유혹을 느낀다. 나도 성공의 여부를 보여주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싶을 때가 있었다. 밑바닥 목회자의 삶에 대한 한풀이라도 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비주류 아웃사이더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내 안의 욕망이 있다. 나도 건축을 하고 그 건물을 보여줌으로 내 삶의 가치를 자랑하고 싶은 인간적인 생각이 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무리를 해서라도 건물을 짓고 보란 듯이 나를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으셨다. 학교부지가 결정되고도 5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리게 하신 것이다. 지루하고 힘들었다. 때로는 나 스스로도 무너질 것 같았다. 주변에서 건축은 무슨 건축이냐며 빈정거리는 이야기도 들었고, 괜한 고생하지 말고 이 정도에서 멈추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것은 욕심이라며 나의 학교에 대한 비전을 폄훼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건축비용은 거의 바닥이 났음으로 현실적인 어려움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기다림의 시간은 정말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거다. 사람과 돈 그리고 무엇보다 내 기도와 마음을 정리하는 의미있는 시간들이었던 거다. 나는 왜 기다림이 필요한지를 배웠다. 왜 5년이라는 시간을 끌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나로 겸손하게 하시려고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몽골학교 건축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하시겠다는 뜻이 있었던 거다. 그래서 효성그룹과 같은 재벌과도 싸우게 하셨으며 한국에서 가장 힘이 센 로펌과도 겨루게 하셨다.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이기게 하심으로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시고 건축을 시작하시려 했던 것이다.
건물을 짓고 나서도 이 건물이 한 개인이나 목회자의 전리품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지어진 것이라고 내 욕망을 잠재우시기 위한 시간들이었다.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고 낮아짐으로 살아가라는 또 한 번의 경고와 은총의 메시지를 주시려고 나를 그렇게나 붙잡아 두신 것이다.
어떻게 건물이 지어져야 하는지를 보여주심으로 욕망의 상징이 아닌 겸손의 상징으로 몽골학교를 지어 주신 것이다. 몽골학교를 짓는 것이 예배당을 짓는 것과 얼마나 달라야 하는지 나는 알았다. 하나님은 예배당을 짓는 것보다 학교를 짓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심을 알았다.
나는 건물 하나를 지은 목사가 아니다. 건축물은 그저 콘크리트 돌덩이에 불과하다. 그것이 우상이 될 수 없다. 자유해야 한다. 세상적이며 인간적인 모든 욕망과 우상숭배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하여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것을 구별하고 살아야 한다. 나는 여기까지라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자신의 욕망을 버려야 한다.
건물이 우상이 되어버린 한국교회에서 몽골학교는 달라야 한다. 건물 짓는 목회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짓는 목회자로 살아야 함을 알게된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