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이전의 유목민이었던 돌궐족의 돈유쿠크 장군이 남긴 비문 '성을 쌓는 자는 망한다. 그러나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를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통찰이라고 믿는다.
이 말은 매우 성서적이며 비단 유목민만의 철학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반드시 새겨야할 진리라고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나는 길이다'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길이라는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길이 되셨으므로 그 길을 통하여 우리로 구원의 은총을 누리라는 것이다. 길이라는 말속에는 예수께서 헌신과 순종으로 자기희생의 본이 되셨음을 보여준다. 길은 인프라다. 경부고속도로가 만들어졌음으로 우리가 산업사회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처럼 길은 공간과 공간 사이의 거리를 극복하게 하는 가장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다. 예수께서 자신이 곧 길이라 하신 것은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셨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곁을 떠나기를 거부하셨다면, 성 안에 머물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기득권을 유지한 채 세습이나 바라는 철없는 존재였다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용기와 아들의 순종이 세상을 구원하였던 것이다. 성 안에서 나와 길 위로 올라오셨음으로 구원의 역사는 드디어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성 안에 머물도록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라 길 위의 삶을 살 것을 가르쳐주는 종교다. 철저히 이 땅에서의 삶은 나그네요 순례자라고 가르쳐야 하며 교회는 그런 존재양식으로 세상을 바꾸고 개혁하는 공동체여야 한다. 유목민처럼 나그네의 철학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성을 쌓고 성 안에서 떠나기를 거부하며 세상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성이 되어버리고 성 안에서 나오기를 회피하는 교회가 어떻게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할까? 어찌 우리가 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거짓이며 위선이다. 예수께서 오늘 우리 교회를 바라보시며 '내가 길이 되라고 했지 언제 성 안에 머물라 했느냐?' 물으실 것만 같다. 성 안에서 나와 길 위의 삼을 살아가는 자가 복되다. 길 위의 인생은 고달플지라도 그것이 진정 우리가 갈 길이며 그것이 예수께서 주신다고 하셨던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