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에서 초고령, 그리고 이주민의 시대
우리사회가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로 그리고 다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보고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전체인구 중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가 넘으면 고령화 사회, 14%가 넘으면 고령사회 다시 20%가 넘으면 초고령 사회라 부른다. 우리 사회는 이미 고령화 사회를 넘어 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으며 적어도 10여년후면 초고령 사회가 될 것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는 사회보다 더 빠르게 고령화되어 가고 있다. 특히 저출산으로 인한 아동청소년의 수가 급감하면서 주일학교가 문을 닫고 있어 적어도 한국교회의 60%는 주일학교가 사라지고 있다는 보도를 쉽게 접하고 있다.
그러므로 초고령과 저출산으로 인한 교회의 기형적 변화는 이미 예감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식으로 나아간다면 몇 년 후에 교회 안에 청소년은 전멸할 것이고 은퇴한 노인들만 남을 것이 분명하다.
한국교회 역시 서구의 교회들처럼 텅빈 교회당만 남을 것이라는 예측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급속히 진행될 것이 두려운 것이다. 우리 교회의 미래는 암울함을 넘어 대안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어떻게 우리는 사회와 교회의 공동화를 극복할 수 있을까?
대안은 이주민이다. 이주민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대안이며 새로운 희망이다. 우리 사회의 급속한 저출산과 초고령 사회로의 변화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이주민들을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없다. 특히 이주민 나그네는 세계선교의 위기를 맞이한 한국교회의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며 하나님이 보내주신 기회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여전히 과거의 틀 안에 머물러 있어 안타깝다. 새로운 교회와 교인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야 함에도 여전히 우리 교회들은 한국교회와 한국인 성도라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음이 슬픈 현실이다. 미래 교회는 세계교회와 다문화 이주민 교회여야 한다.
세계화와 다문화 시대로의 변화는 교회와 선교의 패러다임도 바꿀 것을 요구한다. 더 이상 지체하거나 과거에 머물러 있기를 고집한다면 우리 교회의 미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바뀌어야 한다. 세계화와 다문화 시대로의 거대한 변화의 기회를 붙잡는 자들에게는 은총과 복이 주어질 것이며, 반면에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저주가 돌아오게 될 것이다.
위기와 기회는 언제나 공존한다. 중요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지혜와 결단이다. 저출산과 초고령의 위기를 이주민을 통한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이 그때다.
저출산과 초고령, 그리고 이주민의 시대는 예고된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유능한 미래학자들이 공통으로 예측한 것이다. 문제는 귀담아 듣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 아직도 과거의 프레임에 빠져있는 교회가 문제다. 필자는 이미 22년 전에 이주민 목회를 시작했다. 아무도 이주민을 찾지 않을 때에 이주민을 만났고 그들을 필자의 삶과 목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삼아왔다. 고난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고백한다.
2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세상과 교회는 바뀌지 않았다. 그때에 필자는 비주류, 특수목회자라는 말을 들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필자는 여전히 그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이 바뀌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좋다. 필자가 어떤 특별한 대우를 받고자 함은 결코 아니다. 다만 안타까운 마음 때문이다. 어찌 이렇게 세상 흘러가는 것을 모른 체하고 살 수 있을까하는 마음이 들어서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 거대한 흐름에 응답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위기와 기회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하는 시점이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